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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② – 사회적 전제주의와 해악 원칙의 실천

by thinkhigh1 2025. 5. 29.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는 언제나 명백하지 않다. 독재자는 권력을 들고 나타나지만, 사회적 전제주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전통적인 정치 권력보다 더 깊숙이 침투한 억압의 형태를 지적했다. 그것은 다수의 도덕, 대중의 시선, 관습이라는 이름을 달고 개인의 삶을 조용히 구속하는 **‘사회적 전제주의(social tyranny)’**였다.

밀이 보기에 자유의 위협은 더 이상 왕의 칼날에서 오지 않는다. 이제는 ‘평범함’과 ‘상식’이라는 이름을 한 대중의 기대가 개인을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 무형의 억압이야말로 자유의 가장 교묘하고 위험한 적이라고 판단했다.

다수의 독재, 침묵의 강요

밀은 사회가 개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때, 그것이 법이 아닌 도덕과 여론을 매개로 작동할 경우, 그 억압은 훨씬 더 은밀하고 강력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비공식적인 구속”, 즉 감정적, 윤리적, 언어적 폭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사회적 전제주의는 선의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그렇게 하면 안 돼’, ‘그건 예의가 아니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들은 규범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다수의 강요다. 타인의 시선이 감시자가 되고, **자신이 아닌 ‘사회가 바라는 모습’**을 살아가야 한다면, 개인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밀은 말한다.
“법률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여론이고, 형벌보다 무거운 것은 고립이다.”

오늘날의 SNS 사회는 이 전제를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 익명성과 무책임이 결합된 비판은 자유로운 사고를 위축시키고, 사람들은 자기검열을 통해 스스로를 침묵시킨다. 표현의 자유는 살아 있으나, 말하지 않는 선택이 일상화된 사회. 그것이 바로 밀의 예견이 실현된 공간이다. 🧠

 

 

해악 원칙의 철학적 핵심

 

『자유론』의 중심축인 **해악 원칙(Harm Principle)**은 자유의 범위를 규정하려는 철학적 시도다. 이 원칙은 단순한 윤리적 조언이 아니라, 사회적 간섭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는 정교한 기준점이다. 밀은 개인의 행위가 타인에게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간섭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이 원칙이 실제로 작동하는 데는 여러 철학적 난점이 따른다. 과연 ‘해악’ 어떻게 정의되는가? 누군가의 발언이 타인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면, 그것은 해악인가 아닌가? 밀은 이 지점에서 사적 감정과 공적 피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정치적 주장이나 종교적 비판이 불쾌감을 주었다 해도, 그것이 실질적인 권리 침해나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밀의 입장이다. 감정의 불편함은 해악이 될 수 없으며,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불쾌감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덕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억압

 

밀은 해악 원칙과 대치되는 가장 위험한 형태의 억압으로 도덕적 간섭을 꼽는다. 사회는 언제나 ‘공공의 도덕’을 이유로 개인의 행동을 비난하고, 이단자나 소수자를 배제한다. 특히 종교적 도덕관이나 보수적 관습은 이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밀은 도덕이 단일한 기준으로 작동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인간은 각자 다른 환경과 문화, 감정과 가치관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도덕만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사회적 폭력이다.

그는 말한다.
“도덕은 사회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사유하고 결정하는 과정이다.”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가짜 도덕’은 강력한 억압 도구로 기능한다. 소수자 혐오, 젠더 편견, 정치적 올바름의 과잉 등은 도덕의 이름을 빌리지만, 실제로는 특정 규범을 다른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과정이다. 밀의 철학은 이러한 위선적 구조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공공성과 개인의 충돌

 

자유는 결코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다. 밀은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경우를 명확히 설정한다. 공공의 안전, 질서, 타인의 권리 침해 등 구체적인 해악이 입증되는 경우, 제한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제한조차 최소화되고, 비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공공의 안정을 이유로 시민의 시위를 제한하거나, 종교적 이유로 특정 표현을 금지한다면, 그것이 실질적으로 타인의 권리 침해가 아닌 경우, 이는 해악 원칙에 어긋나는 간섭이다. 밀은 국가나 사회가 과도하게 ‘좋은 삶’을 설계하려 들면, 결국 인간은 자기결정의 주체성을 상실한다고 경고한다.

공공성과 자유는 반드시 균형을 이뤄야 하며, 그 균형점은 비판적 사고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속적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자율과 책임의 이중주

 

밀은 자유를 무조건적인 방임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가 책임과 짝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며, 자유로운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비판을 수반하고, 선택의 자유는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 밀은 이런 점에서 자유를 ‘성숙한 인간의 상태’로 이해했다. 자유를 행사할 수 있으려면, 인간은 먼저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율적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기 스스로의 목적을 결정하고, 그 목적을 위해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인간.”

이 정의는 단순히 권리를 외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의 성숙과 외적 책임이 함께 작동하는 인간상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해악 – 밀의 예언

 

21세기 사회에서 밀의 해악 원칙은 더욱 복잡한 형태로 적용된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며, 기업은 소비자의 정보를 수집해 마이크로 타깃팅을 실행한다. 정보의 자유가 과잉이 되어 가짜뉴스와 증오가 확산되는 현실 속에서, 해악 원칙은 여전히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 표현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밀은 이러한 복잡성을 예견하지 못했지만, 그의 철학은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진실은 충돌 속에서 정제되며, 억압은 오류보다 더 해롭다.”

밀의 자유론은 언제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 사유하고, 실수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존재임을 신뢰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라는 위험한 가능성을 옹호했다.🧩

 

시리즈 2부를 마치며

 

『자유론』 제2부는 ‘자유의 경계’와 ‘사회적 간섭의 정당성’을 묻는다. 밀은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탐색한 존재였으며, 그 답을 오직 ‘자유’라는 공간에서 찾고자 했다.

  • 그는 다수의 억압이 법보다 무섭다는 것을 보았고,
  •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강요에 맞서 철학적으로 대응했으며,
  • 해악 원칙이라는 정밀한 도구를 통해, 자유의 가능성과 한계를 정리했다.

다음 편에서는 『자유론』이 제시하는 자유의 실천적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교육, 종교, 시민사회라는 현실 구조 속에서 자유는 어떤 모습으로 실현되는가.
그리고 그 자유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 마지막 질문이 바로, 시리즈의 완결을 향한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