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영국은 급격한 사회적 변동의 물결 속에 놓여 있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었고, 도시화는 기존의 공동체 질서를 뒤흔들었다. 정치는 확대되고 있었지만, 시민의 권리와 자유는 여전히 완전한 형태로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한 철학자는 자유에 대해 깊은 사유를 시작했다.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다.
1859년 출간된 그의 저서 『자유론(On Liberty)』은 자유주의 철학의 초석이 되었으며, 이후 150여 년간 다양한 이론과 정치 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선언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 개성의 표현, 그리고 사회적 진보를 위한 자유의 필요성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 지성의 문헌이자 도덕적 선언이다.
고전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자유론』이 출간되었을 당시, 세상은 그것을 급진적이고 이질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밀은 일시적인 유행이나 정치적 이익이 아닌, 인간 본성과 사회적 진보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책이 공동 저작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밀은 자신의 지적 동반자인 해리엇 테일러와 함께 『자유론』의 핵심 개념들을 다듬었고, 그녀는 이 책의 방향성과 정서적 토대를 제공했다. 해리엇이 세상을 떠난 뒤, 밀은 그녀의 영향력을 인정하며 헌사를 바쳤다. 이처럼 『자유론』은 사랑과 철학, 정치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대화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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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원리 –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론』의 핵심은 '해악 원칙(the harm principle)'에 있다. 밀은 “인간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영위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원칙은 단순해 보이지만, 근대 사회의 억압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내포하고 있었다.
밀은 이 원칙이 단지 형식적인 법적 기준이 아니라, 도덕적 기준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사회는 개인의 삶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간섭해서는 안 되며, 타인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입증될 때만 간섭이 정당화된다. 예컨대,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습관이나 취향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비난받거나 금지되어선 안 된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의 보수적 도덕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밀은 도덕적 감시가 개인의 자율성을 말살한다고 보았고,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자유 개념은, 방종이 아닌 이성적 자기결정의 권리였다.
표현의 자유는 왜 중요한가
『자유론』에서 표현의 자유는 특별한 무게를 갖는다. 밀은 표현의 자유가 진리를 찾아가는 유일한 통로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며,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가운데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진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일 수는 없다. 오히려 틀린 의견과의 충돌 속에서, 진리는 스스로를 검증하고 더욱 정제된다. 밀은 이러한 과정을 ‘지적 생태계’로 비유한다. 다양한 사상의 공존은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며, 특정한 주장만 허용되는 사회는 결국 지적으로 고사하게 된다.
오늘날의 정보 사회에서도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터넷과 SNS는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동시에, 집단적 검열과 사이버 폭력이라는 새로운 억압 형태도 낳았다. 그런 점에서 밀의 표현의 자유론은 기술 발전 이후에도 여전히 현실적인 지침이 된다. 💬
개인성(individuality)의 철학
밀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개인성(individuality)**을 제시했다. 그는 획일화된 사회가 개인의 독창성을 억누르고, 그 결과로 사회 자체가 정체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다름’은 결코 위험 요소가 아닌, 문명을 진보시키는 촉매이며, 인간의 존엄은 자기 삶을 설계하는 자유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다양한 삶의 실험’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사회가 성공적이고 건강하게 진보하려면, 다양한 방식의 삶이 시도되고 평가받으며, 때로는 실패를 통해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회적 포용’, ‘다문화 수용성’ 개념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공동체와 자유의 역설
『자유론』은 개인주의를 찬양하는 동시에, 공동체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자유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밀은 개인의 자유가 완전히 고립된 섬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자유는 공동체 안에서 책임, 공감, 자율적 참여와 결합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밀은 공동체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예를 들어, 공공의 안전이나 타인의 권리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경우에는 자유가 제한될 수 있지만, 그 제한은 반드시 비례성과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대 헌법 이론에서 ‘기본권 제한의 원칙’과 일치하는 사고이다.
『자유론』의 현재적 가치
오늘날 세계는 자유를 둘러싼 새로운 갈등에 직면해 있다. 표현의 자유가 혐오 표현으로 변질되는 경우, 종교적 신념이 인권과 충돌하는 사례, 그리고 사적 기업이 개인의 정보를 통제하며 새로운 ‘보이지 않는 감시 체제’를 구축하는 현상까지, 자유는 여전히 시험대 위에 있다.
이러한 시대에서 『자유론』은 단지 고전으로서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적 나침반이 된다. 밀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자기 삶의 주체로 서기 위한 조건을 말했고, 사회가 그 가능성을 지켜줄 의무를 강조했다.🔍
시리즈의 서막 – 더 깊은 사유로
『자유론』 1부는 밀의 철학적 문제의식과 자유의 기초를 조명하는 여정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이후 시리즈에서는 사회적 전제주의라는 보이지 않는 억압의 실체, 그리고 밀의 해악 원칙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다루며, 『자유론』이 가진 실천적 지혜를 더욱 정밀하게 탐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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