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다 보면 자연스레 시간이라는 주제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늘 시간 속에 살고 있고, 시간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작 그 시간을 제대로 바라보는 법은 배운 적이 없지요. 그래서 오늘은 두 명언을 중심으로, 우리가 매일 흘려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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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 인생이라는 자본의 가장 귀한 화폐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출처: Poor Richard's Almanack, 1748년판, "Advice to a Young Tradesman"
※ 이 문장은 프랭클린의 대표적 실용 철학이 집약된 짧은 수필로, 시간의 가치를 자본으로 비유한 대표적 사례로 널리 인용됩니다. 프랭클린은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는 말도 함께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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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소진되는 것이다.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생각하는 자는 이미 삶을 잃고 있다."
- 장자 (莊子)
출처: 『장자(莊子)』 외편 「천도편(天道篇)」 중 문맥에서 재구성
※ 직역된 원문은 없으나, "하루의 시간은 짧고, 밤낮은 쉬지 않고 우리를 갉아먹는다(其日固短,而夜與日相食也)"는 장자의 사유에서 현대 철학자들이 의역해 온 표현입니다. 한국에서는 『장자』(김학주 역, 을유문화사) 또는 중국철학연구자들의 해석본에서도 이 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프랭클린이 말하는 시간의 경제학 💸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한 시간은 '화폐'입니다. 화폐는 본래 쓰는 방식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도구지요. 누군가는 그 돈으로 풍요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 돈을 잃어버리고 후회합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하루 24시간은 겉보기엔 모두에게 똑같지만, 그 쓰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이 됩니다. 프랭클린이 말한 자본이라는 단어는 사실 무척 무게감이 있는 단어입니다. 자본은 투자되고 계산되고 회수되며 늘어나거나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시간은 어디에 투자되고 있을까요? 프랭클린은 이를 매우 실용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하루를 계획하고, 기록하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시간이라는 자본을 늘려갔습니다. 이는 단순히 성공을 향한 전략이라기보다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였다고 봅니다. 예컨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낸 10분이 매일 반복된다면 한 달이면 5시간, 일 년이면 60시간이 넘습니다. 그 시간 동안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도 있었으며 세상에 없는 것을 창작을 했을 수도 있겠지요. 프랭클린은 그런 무심한 낭비가 결국 삶 전체의 구조를 바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 자는 인생을 싼값에 팔고 있는 것'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시간이라는 것이 단지 생산성을 위한 도구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프랭클린도 모든 시간을 일에만 쓰라고 말한 게 아닙니다. 그는 일과 삶, 공부와 휴식, 집중과 여백 사이의 경계선을 스스로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는 머리가 맑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거나 창작적인 일을 해야 하고, 오후엔 루틴한 반복 작업을 넣으며, 저녁에는 회고나 가족과의 시간을 배치하는 식입니다. 즉 하루를 단지 흘려보내지 않고 구조적으로 설계한다는 것이죠. 이런 습관이 반복되면 결국 나의 삶 전체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니 시간은 돈보다 훨씬 더 귀한 화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장자가 말하는 ‘존재하는 시간’ 🌿
반면 장자는 시간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을 합니다. 그는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존재를 깎아먹고 있는 소모적인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다소 냉소적으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이지요.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말의 본질은 ‘지금 이 순간의 삶에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장자에게 있어서 시간은 시계로 측정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와 함께 있는 자연의 리듬이며, 우리가 무언가에 쫓겨 사는 한 잃어버리기 쉬운 감각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무위자연’, 즉 인위적인 목적과 욕망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장자는 그런 삶이야말로 가장 큰 낭비라고 본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쌓아가기보다는, 오늘 하루에 머무르는 것. 바로 그 감각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방식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거나, 커피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은 단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하는 순간입니다. 장자가 말한 ‘소진되는 시간’은 그저 피곤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자각 없이 놓쳐버리는 삶의 본질에 대한 경고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조언일지도 모릅니다. 효율성, 속도, 경쟁 중심의 사회에서는 쉴 틈 없이 '해야 할 일'로 가득한 시간만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장자는 그런 삶을 근본적으로 부정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충만할 수 있는 시간,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자연의 소리를 듣는 시간. 이런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회복시켜주는 시간이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우리가 자꾸 삶의 의미를 외부에서만 찾으려 할 때, 장자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지금 여기'라는 내면의 장소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합니다.
두 철학 사이에서 균형 잡기 ⚖️
이 두 명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삶을 구성하는 두 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프랭클린은 시간을 설계하고 주도하라고 말합니다. 한편 장자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머무르라고 말합니다. 전자는 능동적 시간이고 후자는 수용적 시간입니다. 능동적 시간은 계획하고 실행하며 성취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목표를 세우고 나아갈 때 필요한 힘이지요. 반면 수용적 시간은 멈추고 들여다보고 돌아보는 데에 필요합니다. 바쁘게만 살다 보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이 두 관점을 함께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훨씬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균형을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혹시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오늘 하루는 두 명언을 떠올리며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아침엔 프랭클린의 말을 기억하며 오늘의 시간 계획을 세우고, 오후엔 장자의 말을 되새기며 잠시 멈춰 현재에 머물러 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이 쌓이면, 결국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도 바뀌게 되겠지요. 시간은 결국 도구이자 거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양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프랭클린과 장자의 말이 남긴 울림이 여러분의 시간에 작은 흔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내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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