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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함께 읽기/논어(論語)

[학이편 제1장 1절] 배움, 벗, 그리고 평정심이 주는 진정한 기쁨

by thinkhigh1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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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이 구절은 논어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배움(學)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도(道)를 체득하여 인격을 수양하는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즐거움은 이러한 배움을 삶의 적재적소에 실천하며(習) 얻는 내면의 성취감입니다. 두 번째 즐거움은 같은 뜻을 품고 있는 벗(朋)이 멀리서 찾아와 서로의 배움을 확인하고 교류하는 관계적 기쁨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즐거움은 자신의 배움과 수양이 세속적인 명예나 인정(人不知)과 무관하게 이루어질 때 얻는 초연하고 의연한 평정심입니다. 이는 유학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 즉 군자(君子)의 최종 경지를 보여줍니다.

 

 

해설 및 해석상 쟁점

 

  • 원전: 『논어(論語)』 「학이(學而)」편 제1장
  • 해설:
    • 學(학): 단순히 글자를 배우는 것이 아닌, 하늘이 부여한 본성인 도(道)를 깨우치고 인간의 도리를 배우는 인격 수양의 과정입니다.
    • 時習之(시습지): 時(시)는 '때때로'라는 뜻 외에 '적절한 때에'라는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즉, 배운 것을 현실의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習(습)은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나는 것을 익히듯,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배운 것을 몸에 체화시키는 행위입니다.
    • 說(열):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지적인 기쁨'이나 '내면의 만족감'을 의미합니다. 이는 외부의 조건과 무관하게 배움 자체에서 오는 순수한 즐거움입니다.
    • 樂(락): 사람과의 교류에서 얻는 '사회적인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說(열)이 내면의 기쁨이라면, 樂(락)은 외향적인 관계 속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 해석상 쟁점: 이 구절은 세 가지 즐거움을 단순 나열한 것이 아니라, 배움-관계-평정심이라는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한다는 점에 학자들은 주목합니다. 주희(朱熹)는 그의 『논어집주』에서 이를 배움의 세 가지 단계로 보았습니다. 첫째, 배움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초보 단계. 둘째, 뜻을 같이하는 벗과 교류하며 배움의 깊이를 더하는 단계. 셋째,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의 경지에 이르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구절이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인격 완성을 향한 점진적인 과정을 보여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맥락과 다른 고전의 연관성

이 구절이 쓰인 춘추전국시대는 주나라의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제후국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던 극심한 혼란기였습니다. 사회적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위해 끊임없이 경쟁했습니다. 공자는 이러한 세태 속에서 진정한 배움의 가치가 무엇인지 역설하고자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배움과 익힘은 현실적인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어' 1장 1절의 메시지는 다른 중국 고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 『맹자(孟子)』: "군자가 즐거워하는 바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 맹자는 외재적인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는 즐거움보다, 내면의 성숙과 관계에서 오는 내재적 즐거움이 진정한 기쁨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논어'의 세 가지 즐거움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 『도덕경(道德經)』: "만족을 아는 자는 부유하다(知足者富)." - 노자는 외부의 소유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만족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논어'의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음"은 곧 '도덕경'이 말하는 '만족'과 일맥상통하며, 외부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평화를 추구합니다.
  • 『순자(荀子)』: "배움이란 그치는 곳이 없다(學不可以已)." - 순자는 성악설에 기반하여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선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공자와는 출발점이 다르지만, 배움의 중요성과 평생에 걸친 실천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자의 가르침과 궤를 같이합니다.

현대적 의미와 인문학적 통찰

오늘날 우리는 정보 과부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지식이 손가락 하나로 얻어지지만, 정작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익힘(習)'의 과정은 소홀히 합니다. 공자의 첫 구절은 우리에게 지식 습득의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단순히 스펙을 쌓기 위한 배움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인격을 완성하는 배움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을 준다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또한,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는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SNS를 통해 수많은 '친구'를 맺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은 많지 않은 시대입니다. 공자는 뜻을 함께하는 벗과의 만남을 큰 즐거움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서로의 배움을 격려하고 지지하며 함께 성장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인부지이불온(人不知이不慍)'은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입니다. SNS '좋아요'나 사회적 인정에 목마른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소인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공자는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걷는 군자는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내면적 성장에 집중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세 가지 즐거움은 결국 우리가 삶에서 진정한 평화와 만족을 찾기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결론: 배움의 세 가지 기쁨

'논어'의 첫 구절은 배움의 길에서 얻는 세 가지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배움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기쁨. 둘째, 뜻을 같이하는 벗과 교류하는 기쁨. 셋째, 타인의 인정과 무관하게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의 기쁨. 이 세 가지는 배움이 지식 축적을 넘어 인간적인 성숙과 삶의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공자는 2,500년 전부터 이미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지혜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내면의 수양 속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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